2009년 07월 27일
바더 마인호프 (Der Baader Meinhof Komplex), 변화 추구의 방식에 대하여...
바더 마인호프, Der Baader Meinhof Komplex.
독일의 유명한 저널리스트 스테판 오스트 (Stepan Aust)의 동명 소설과 실화를 바탕으로 "브루클린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의 울리 에델 감독이 연출한 독일 영화.
70년대 독일 적군파(RAF) 1세대와 2세대를 소재로 독일 영화사상 최고 제작비 2천만 유로가 소요된 영화로 2009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에 노미네이트되었으며, 골든 글로브 외국어 영화상 후보로 선정되었다. 현재 국내에는 종로의 하이퍼텍나다와 압구정 CGV 무비꼴라주의 2개 상영관에서만 개봉 중이다.

그나마 집에서 가장 가까운 압구정 CGV에서도, 평일에는 오후 9시, 12시에만 상영하는 관계로 주말에 따로 시간을 내어 관람할 수 밖에 없었다. 오전 9시 10분, 이른 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객석이 예상보다 드문드문 채워져 있었다. 내가 왜 이 영화에 관심을 가지고, 일부러 주말 이른 시간에 멀리까지 오게 되었을까? 이유는 바로 호기심이다. 우연치 않게 인터넷에서 영화 소개를 접했을 때, 잘 알려지지 않은 독일 적군파 (RAF; Red Army Faction)라는 집단과, 그 주도적 인물 중 하나인, 마인호프라는 여류 저널리스트, 그리고, 지성적인 그녀가 극렬 행동분자로 변모하는 과정에 대해 강렬한 호기심이 발동하였고,이 영화는 그러한 욕구를 십분 충족시켜주는 매우 사실적인 영화였다. (실은 영화를 보고 난 후, 위키피디아의 힘을 좀 빌었다. 2시간 반의 상영시간에 축약된 주요 사건들의 배경을 충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전후 독일 현대사에 대한 기본 지식이 필요하였다)
먼저, 당시 전쟁 중인 베트남도, 남미도 아닌, 경제적으로 한창 잘 나가던 서독의 젊은이들로 하여금, 총을 들고 무장투쟁에 나서게 한 모티브는 무엇이었을까? 자본주의의 모순, 미국을 위시한 서구 제국주의, 컨슈머리즘의 새로운 착취 등을 말하겠지만, 그것은 그들이 자신이 믿는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폭력이라는 극단적인 수단을 선택하게한 충분한 이유를 제공하지 못한다.
사실 그것은 그들의 지극히 개인적인 선택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자신과 뜻을 같이 하는 부류들 사이에서도 달라 보이고 싶은, 새로운 방향을 제시함으로써, 우월해 지고 싶은 일종의 영웅심, 또는 신념과 사상의 단 맛에 사로잡혀, 현실의 쓰라림을 궂이 외면해 버리는 비이성적인 충동, 격정 등이 그들을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무장 테러단체의 일원으로 변모시켰다.

그들은 단지 자본주의에 저항한답시고, 서점에서 책이나 훔치고, 세계의 이목을 끈다고 늦은 밤에 백화점에 불이나 놓다가 감옥에서 썩을 철부지들로 끝날 공산이 매우 컸다. 그러나, 실제 그들은 어느새 자신이 원하던 영웅이 되어 있었다. 그리하여, 그들을 더욱 고무시키고, 과격한 투쟁으로 이끈 원인은 바로 사람들의 일탈에 대한 욕구를 그들이 해소시켜 주었기 때문이다. 당시 조사에 따르면, 대다수 독일인들이 그들을 숨겨 주겠다고 대답했다. 영웅은 이렇게 타고 나는 것이라기 보다, 사회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 진다.
정확히 모르지만 사회의 어떤 모순과 부조리를 인식하고 있던 사람들이 또한, 자신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지만, 행동으로 저항하는 이들을 통해 대리 체험의 카타르시스를 지속하기를 원했다. 또한, 마인호프와 같은 지성과 외모를 고루 갖춘 스타 여류 저널리스트의 참여와 그녀의 논리정연한 듯한 투쟁 메세지들이 테러리스트들을 지지하는 독일인들에게 자기 합리화를 제공하였을 것이다. 그렇게 독일 적군파는 은행을 털어 자금을 마련하고, 민중의 도움으로 은신처를 얻으며, 더욱 더 극렬해지는 테러와 함께 전국적인, 나아가 세계적인 혁명단체로 성장해 나갔다.

그러나, 그들의 미래는 사실 예정된 것이었다. 그들은 세상의 변화를 갈구했지만, 그럴 만한 능력을 갖추지 못했고, 따라서, 단지 그들의 초심이었던 변화에 대한 단초, 세상으로부터의 주의 환기 이상의 결과를 얻을 수 없었다. 대리만족을 원하는 팬들을 위해 더욱 자극적인 쇼를 기획해야 했을 뿐이었다. 그들에게는 그러한 대중적인 지지마저 잃어서는 더이상의 미래가 없었다. 그리고 결정적인 실수는 그들의 테러가 드디어 경찰, 군인이 아닌 민간인들을 다치게 했다는 것이었다. 독일의 극우 보수언론 스프링거 사의 폭탄 테러에서 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사망했고, 독일인들은 로빈후드가 자신들을 위협할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또한, 정부기관, 미군 기지 등에 대한 폭탄 테러, 요인 암살 등으로 독일 정부로 하여금 전면적인 검거작전에 나서게 한다. 결국 그들은 시민들의 제보에 의해 체포된다.
독일 적군파를 달리, 바더-마인호프 갱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테러 발생 초기에 그룹의 리더들의 이름을 따서 명명한 것이었다. 이 두 리더 중, 안드레아스 바더는 베를린대 출신의 학생운동가로 당시 좌파 운동의 아이콘, 독일사회주의대학생연맹(SDS)의 루디 두치케에 비해서는 무명에 불과했지만, 특유의 카리스마와 행동력으로 추종세력을 확대해 나갔다. 그러나, 바더는 영화에서 보여졌던 것과 같이 전략적 유연성이나, 현실 감각이 결여된 불도저 타입의 리더쉽의 한계를 노출하였으며, 이로 인해 비교적 냉철하고 이성적인 마인호프와 대립하기도 한다.
마인호프, 또한, 무장 투쟁이라는 자신의 선택을 이론적으로 합리화하고, 대중의 호응을 모으는데 급급했을 뿐, 투쟁의 현실적 대안이나, 뚜렷한 비전을 제시하지 못했다. 그녀의 글들은 비판적이고 선동적이었지만, 설득력이 부족했다. 예를 들어, 그녀의 유명한 주장에 따르면, 돌맹이 하나를 던지면 범죄이지만, 돌맹이 백개를 던지면 정치적 행위로서 이해된다고 하거나, 개인이 은행을 털면 범죄이지만, 저항단체가 은행을 터는 것은 자금조달에 대한 해결책의 일환이라고 자신들의 행위를 변호하고 있다.

결국, 이 둘이 머리와 손발이 되어 이룬 팀웍이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 일으킨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전적으로 그들 투쟁의 논리적 정당성이나, 변화, 진보에의 기여로 인해서 였다기 보다는 단지, 이데올로기 시대, 폭력과 폭력의 나선형 구조에서 일어난 하나의 스파크, 센세이션에 불과한 것으로 이해한다. 오히려, 이후, 적군파 2세대, 3세대를 탄생시켰고, 타 테러집단들의 전형과 사상적 기반을 제공함으로써, 무의미한 보복과 보복을 통해 피의 대가만 커지게 할 뿐 이었다.

그들은 감옥에서도, 재판 과정에서도 투쟁을 지속하였고, 적군파 2세대, 아랍 테러집단 등 추종자 및 외부 세력과 연대하여 탈옥을 꾀하였지만, 수포로 돌아가자, 희망이 없음을 깨닫고 자살의 길을 택하였다. 변화에 대한 고민보다는 행동을, 세상에 대한 신뢰보다는 비판과 부정을, 대화와 설득보다는 총과 화약의 힘을 믿었던, 그리고 대중의 변덕스러운 열광에 도취되어 부모와 자식을 내팽개치고, 자기파괴의 극단으로 치달았던 가엾은 인간 군상들. 세상의 진정한 변화를 이해하지 못하고 설익은 사상과 논리를 근거로, 사람의 생명을 존중하지 않았던 바더-마인호프 그룹의 결말은 그러하였다.
영화를 보고, 돌아오는 내내 내 머리를 떠나지 않았던 한 가지 생각은 그렇다면, 우리가 변화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점이었다. 그것은 다시 변화란 무엇이며, 얼마나 가치있는 것인에 대한 질문으로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변화는 이유나 동기가 어떠하였든, 결국 세상에 영향을 미치려는 주관적 표출이며, 따라서, 따라서, 몇 배의 자제와 겸손함을 요한다. 자신을 바꾸려는 자, 과감해야 하고, 남을 바꾸려는 자, 겸손하여야 할 것이다. 자기 자신을, 또한 주위의 한 사람도 바꾸지 못하는 사람은 성숙하도록 인내해야 할 것이며, 세상에 대한 애정이 없는 자, 그 어떤 실행도 삼가해야 할 것이다. 설령 변화의 필요를 인식하고, 갈망하는 것에 그친다 할 지라도, 자신의 내적 불만 해소를 위해 남에게 영향을 미치려는 그 행위 자체가 모순이며, 변화의 대상이다. 역사는 그런 어리석은 행동으로부터 변화하지 않을 만큼 충분히 현명하였다
# by | 2009/07/27 14:48 | 短想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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